[야만의 사법부-서문] 마녀재판으로 전락한 한국의 사법부

사회 / 고일석 기자 / 2022-06-07 11:57:09
국민을 위해 사법부가 있는 것이지 사법부를 위해 국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에 대한 존중은 그들의 오류가 ‘인간의 한계’로서 발생하는 경우에 그 범위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사법부의 권위라는 이름 아래 국민이 스스로 침묵하는 것은 사법부를 고대국가의 군주로 떠받드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

판사들은 “진실발견을 위한 법관의 고뇌”를 늘 입에 올린다. 그들의 판단에 따라 개인의 생사여탈이 결정되므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진실 왜곡을 위해 고뇌하는 법관들도 있다. 

 

법관도 인간이니 실수를 한다. 그런 한계 위에서 국민들은 법관의 권위를 인정하고, 직접 당사자가 아니면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또한 많은 경우 ‘확정된 사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것은 판사라는 직군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국가 공동체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사자의 경우 혹시 판결에 불만이 있어도 그런 권위에 짓눌리기도 하고 스스로 권위를 존중하기 위해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한계로 비롯된 오판이나 오심이 아니라 사실 왜곡과 취사선택, 그리고 검찰도 주장하지 않은 새로운 논리와 사실까지 얹어서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피고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매우 많다. 

 

정경심 교수의 재판은 “피고인이 무죄임을 입증하지 못했으니 유죄”이며 “정경심 아니면 누가 했겠냐”로 요약된다. 핵심 혐의였던 표창장에서 검찰은 아무 것도 입증하지 못했다. PC에 있는 파일을 그대로 출력했을 때 혐의의 대상이 된 표창장 사본과 동일하거나 유사하게 출력된다는 것도 입증하지 못했고, 혐의 성립에 필수적인 PC가 사건 당일 방배동 자택에 있었다며 제시한 증거도 모두 부인됐고, 따라서 설사 위조가 있었더라도 그 행위자가 정경심 교수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법원은 원본도 없이 사본과 촬영본만을 가지고 판단한 불확실한 육안 감정을 바탕으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는 모조리 부정하고, 최성해의 “표창장 내준 적 없다”는 증언과 학교 관계자들의 “모른다”는 증언만을 받아들여 ‘위조’라고 판단했고, 결정적으로 행위자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찾지 못한 채 “정경심이 아니면 누가 했겠냐”는 반문으로 판결을 내렸다. 

 

더욱이 1심에서 주장되고 받아들여진 “사건 당일 PC가 방배동에 있었다”는 주장은 2심 판결에서 명시적으로 배제하지 않은 채 판결문에서는 제외됐고, 일부의 디지털 증거와 정황 증거만으로 유죄 사실을 확정한 뒤, 정경심 교수가 당일 해당 PC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변호인 측 포렌식 분석을 “검찰 주장 중 일부 사실만으로 위조 입증에 충분하니 살피지 않겠다”며 아예 무시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 분석을 탄핵할 수 없다면 그 ‘충분한 입증’이야 말로 살펴볼 필요 없이 기각되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표창장 혐의와 함께 기소된 10개가 넘는 다른 혐의들이다. 

 

흔히 있는 명예훼손 사건에서는 “적시된 사실의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에는 세부(細部)에 있어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허위의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판례가 확립되어 있다. 

 

즉 “모 검사가 모월 모일 모 룸살롱에서 피의자 모 씨로부터 000원에 상당하는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주장을 할 경우 “검사가 피의자로부터 룸살롱 향응을 받았다”는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하면 ‘날짜와 금액’과 같은 세부에 있어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있어도 이를 허위의 사실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경심 교수의 사건에 있어서 소위 ‘7대 스펙’이라고 부르는 ‘체험활동 증명서’ 혹은 ‘인턴 증명서’는 ‘활동을 했다’는 본질이 아닌 시간이나 제목이 차이가 나거나 다른 것을 모두 허위라고 판결했으며, 활동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 다른 관련 사실들을 억지로 부인하기도 했다. 

 

명예훼손 사건에서의 ‘허위’와 업무방해 사건에서의 ‘허위’의 기준이 이렇게 거꾸로여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나 이 모든 허구에 찬 판결이 오로지 ‘사법부의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적의(敵意)를 가진 쪽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는 확정된 사실로 인용되고, 판결의 문제를 지적하는 주장은 위축시키고 있다. 

 

국민을 위해 사법부가 있는 것이지 사법부를 위해 국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에 대한 존중은 그들의 오류가 ‘인간의 한계’로서 발생하는 경우에 그 범위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사법부의 권위라는 이름 아래 국민이 스스로 침묵하는 것은 사법부를 고대국가의 군주로 떠받드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 

 

언론개혁은 언론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탄핵하는 것으로 비롯되어 일정한 성과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법개혁도 섣부른 제도 논의 이전에 사법부에 대한 탄핵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야만의 사법부①] "PC는 정경심 소유" 부정 위해 없는 말 지어낸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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