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 책임은 피고인에게”... 괴(怪)논리 내세운 정경심 1심 재판부

사회 / 고일석 기자 / 2020-12-24 12:36:16
정 교수 1심 판결은 정 교수의 혐의를 검찰 공소장보다 더 공격적으로 해석하고 있고, 검찰의 유죄 입증 책임을 외면한 채 "피고인이 무죄를 입증하지 못했으니 유죄"라는 논리에 입각하고 있다. 이어질 항소심을 생각한다면 “피고인이 2심에서 무죄를 입증해보라”는 또 하나의 공소장을 법원이 내놓은 것이다.
▲ 정경심 교수가 23일 1심 선고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23일 정경심 교수의 선고 공판 직후 법원이 배포한 설명자료만 보면 법원의 1심 선고는 피고인 측의 증거는 완전히 무시하고 검찰 측 주장은 완벽하게 받아들이면서, “의심스러운 것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있다.

또한 정 교수의 혐의를 검찰 공소장보다 더 공격적으로 해석하고 있고, 검찰의 유죄 입증 책임을 외면한 채 "피고인이 무죄를 입증하지 못했으니 유죄"라는 논리에 입각하고 있다. 이어질 항소심을 생각한다면 “피고인이 2심에서 무죄를 입증해보라”는 또 하나의 공소장을 법원이 내놓은 것이다.


“조민은 봉사활동한 적 없다”는 재판부

가장 중요한 동양대 표창장 위조 건에 대해 재판부는 “조민은 봉사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를 기초로 “2012년 표창장은 애초부터 없었고, 2013년에 재발급받은 표창장은 위조된 것이며, 직원이나 조교가 위조한 흔적이 없으니 정 교수가 위조한 것”이라는 것이 재판부 판단의 골격이다.

또한 “동양대의 부서장에게 강좌를 수강하지 않았거나 그에 대해 아무런 기여가 없는 사람을 수상자로 선정할 권한이 위임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상한 표현으로 “표창장 등의 발급이 부서장에게에게 위임됐다”는 피고인 측의 ‘포괄위임론’을 기각하고 있다. 이 표현만 놓고 본다면 “조민이 봉사활동을 했다면 포괄위임론을 적용할 수 있으나 봉사활동을 한 적이 없으므로 이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유죄 판결 논리의 출발점이 된 “조민은 봉사활동이 없다”는 판단은 해당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당시 조민 씨가 동양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원어민 교수의 증언을 철저하게 배제한 것이다. 당시 조민 씨를 학교에서 목격했던 다수의 증언에 대해서는 “조민이 봉사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엄마 학교에 놀러온 것” 쯤으로 취급해버린 것이다.

재판부의 입장은 업무일지와 CCTV처럼 조민 씨가 봉사활동을 했다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증거가 있지 않는 한 그와 관련된 일체의 증거와 증언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입증 책임을 피고인에게 돌린 것이다.


피고인의 기술적 입증 완전히 무시

검찰의 ‘표창장 위조 시연(示演)은 “검찰이 주장하는 방법으로 소위 타임라인에서 제시한 시간 안에 표창장 사본의 핵심 특징을 담을 표창장을 만들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가정용 프린터로도 출력할 수 있음이 입증됐다”는 엉뚱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가정용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이 재판의 쟁점이 아니었으며 혐의를 입증하는 내용도 아니다.

검찰은 2013년 6월 당시 강사휴게실 PC가 방배동 자택에 있었으며, 이것을 기초로 정경심 교수가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하기 위해 검찰이 제시한 IP주소, MAC주소 등의 근거는 변호인단에 의해 완벽하게 논파(論破)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에 대한 피고인 측의 기술적인 입증은 단 한 부분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강사휴게실 PC 1호에 설치된 파일 또는 프린터의 자체기능을 이용하여 어렵지 않게 PDF 파일의 여백을 조정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검찰의 주장일 뿐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PDF 파일의 여백을 조정하는 작업은 표창장 파일 제작에서 대단히 핵심적인 부분으로, 이를 PC의 파일이나 프린터 기능으로 ’어렵지 않게‘ 조정할 수 있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뇌내망상에 불과하다.

또한 재판부는 원본이 없는 이 재판의 한계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스캔 혹은 복사 과정에서 표창장의 형상이 변형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각 동양대 표창장 사본의 총장 직인 부분이 실제 동양대 총장의 직인과 인영의 크기가 다른 점”을 “실제 총장 직인으로 날인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의 근거로 내세웠다.


검찰도 하지 않은 주장 덧붙인 판결

재판부는 단국대 의대 연구소 체험 활동에 대해 “논문 작성을 위한 활동과 기여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이는 “간단한 실험과 함께 논문 작성을 위한 실질적인 작업에 참여했다”는 지도교수의 증언을 완전한 허위 증언으로 간주한 것이다.

재판부는 “지도교수와 피고인 사이에 조민을 논문의 저자로 등재하기로 하는 약속이 있었다”는 전혀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이는 최소한 그동안 보도를 통해서는 알려지지 않는 내용이었다. 이를 어떻게 입증하고 있는지 판결문 전문을 지켜볼 일이다.

또한 재판부는 “조민의 단국대 논문과 지도교수 아들의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확인서 사이에 대가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인턴 및 체험활동의 기회를 학부모들을 통해 확보했고, 참여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제공됐다”는 한영외고 관계자의 증언을 배제한 채, ’스펙품앗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언론의 선정적인 주장을 판결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학문의 자유 존중” 천명한 전임 재판부 입장 외면

공주대 체험활동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지도교수의 증언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이 또한 “홍조식물의 물갈이 작업만 했다”는 언론의 평가를 판결의 근거로 동원했다. 생명공학연구소에서 홍조식물의 물갈이 작업은 “물갈이 작업만 했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벼운 작업이 아니다.

재판부는 공주대 체험활동에 대한 전임 재판부의 입장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전임 송인권 부장판사는 2019년 12월 10일 3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우리 헌법은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므로 대학이 자율권을 가지는 부분에 있어서는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밝히고 “사회의 기본질서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라면 거기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헌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주대 건과 관련해서는 공주대 윤리심판원이 문제가 없다고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아는데 그 심의가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인지를 확인해줄 것”을 변호인에게 요청했다. 공주대 결정이 최종적인 것이라면 그 결정을 존중하고 법원에서는 따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공주대는 윤리심의회의 심의를 통해 조민 씨의 체험활동과 확인서, 그리고 포스터 작성과 학회 참석 등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확인서의 어휘와 문맥, 학회에서의 역할까지 미주알 고주알 따지면서 법적인 잣대를 들이댔다.


“뒷풀이 참석 위해 세미나장 갔다”는 창의적인 해석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과 관련해 재판부는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내용‘의 일부만으로 조민 씨의 활동을 임의로 재구성했다. 동영상과 증인들의 증언을 통해 조 씨가 세미나와 이후의 회식에 참석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자 “뒤풀이에 참석하기 위하여 중간 휴식시간 이후에 세미나장에 혼자 왔을 뿐, 공인인권법센터의 인턴 활동을 위하여 세미나가 시작되기 전에 온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 없다”는 창의적인 주장을 내놨다.

조민 씨가 뒤풀이 자리에 특별히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고, 아무 뒤풀이나 가서 여흥을 즐기는 것이 취미도 아닐진대, 뒤풀이에 참석하기 위해 세미나장에 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 역시 조민 씨의 세미나 참석을 증언한 김원영 변호사의 증언을 배제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세미나 당시 진행요원으로 조민 씨의 접수를 받았다. 김 변호사는 “교수나 대학원생들이 주로 오는 세미나에 나이가 어린 학생이 왔기에 신기한 마음에 대화를 나눴다”고 했고 "고등학생인데 어떻게 이런 데를 왔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아빠가 가 보라고 했다"고 답했으며, "아버지가 누구냐"는 질문엔 "조국"이라고 답했다고 증언했다.


“여론 영향 많이 받아”... 판사사찰 내용 입증한 재판장

이처럼 재판부의 판단은 검찰의 주장은 두 배 세 배 부풀려서 인정하고, 피고인의 주장은 한 줄 한 글자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은 아예 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검찰이 주장하지 않은 것도 임의로 만들어내는 비논리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판결문 곳곳에 언론의 주장과 표현을 받아들이고 인용함으로써 “주관이 뚜렷하다기보다는 여론이나 주변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평”이라고 기록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사찰 내용이 대단히 정확했다는 것을 임정엽 재판장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이 판결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 합리적 의심이 존재할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해야한다는 형사법정의 대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법관의 애씀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괘씸죄로 단죄하고자하는 의욕이 넘치는 판결 앞에서 많은 국민이 좌절했을거라 생각하니 전직 법관으로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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